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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연예인

꽃길만 걸은 줄 알았던 배우 이정재의 비하인드 스토리

by 짤줍맨 2022.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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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정재의 성공 이야기가 아닌, 시청자들은 잘 모르는 비하인드 스토리에 대해 글을 작성해보았습니다.

 

최종회 시청률 64.5%, 매일 같이 막히던 서울 대로변을 만주벌판으로 만든 드라마 <모래시계>. 

그 폭발적인 인기의 주역들 중 이정재도 있었습니다. 

순애보 보디가드 '백재희' 역을 등장합니다. 당시 SBS에 '백재희' 죽이지 말라는 편지가 쇄도하고 전국 각지의 검도장 예약이 꽉 찰 정도로 전국엔 '백재희' 신드롬이 일어났습니다. 

블랙핑크 제니의 본명인 '김제니'도 작명 당시 어머니가 '백재희'에서 따왔을 정도입니다. 그 외에도 극중 검도를 하는 이정재 때문에 전국 각지 검도장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했고, 말수가 굉장히 없는 캐릭터라 남자들이 미팅만 가면 한마디로 안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그 인기는 대단했습니다. 

<모래시계>가 데뷔작은 아니지만 이정재는 아직 신인이었고, 감당할 수 없는 인기에 <모래시계>가 끝나고 곧바로 방위에 입대하게 됩니다. 

방위 시절 에피소드도 남다른데, 우선 동기가 유재석입니다. 이정재가 "스스로 나를 업어 키웠다"라고 말할 정도로 유재석이 많이 챙겨줬다고 합니다. 유재석과 이정재의 집이 가까운 편이라 서로의 차로 카풀해서 출근하곤 했는데 항상 유재석이 직접 차로 데리고 출근시켰다고 합니다. 또 이정재는 군복무 도중 <모래시계>로 여러 시상식에서 초청을 받았는데 특히나 대종상은 너무가 가고 싶었던 나머지 군 규정을 위반하고 시상식에 참석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그날 술을 많이 마시고 다음날 무단 결근을 해버리는 대형 사고를 쳤습니다. 이 때문에 며칠 동안 연병장을 몇 바퀴씩 뛰었다고 합니다. 

이정재는 청룡영화상의 그랜드 슬래머입니다. 신인상, 조연상, 주연상을 모두 석권한 것인데 현재까지 그랜드 슬래머는 장동건, 이정재 두 명 뿐이라고 합니다. 이정재는 1994년 <젊은남자>로 신인상, 1999년 <태양은없다>로 남우주연상, 2013년 <관상>으로 남우조연상을 받으며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습니다. 그 외에도 신인상은 무려 6개나 받았고, 남우주연상은 4개, 남우조연상 2개를 받는 등 '이정재'라는 이름에 걸맞게 많은 상을 거머쥐었습니다. 

젊은남자 중

이정재는 부잣집에서 자란 듯한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경제적으로 상당히 힘들게 자랐습니다. 아버지 집안이 의사 집안이고, 외가는 양조장을 경영해서 초등학교 때까지는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할아버지가 국회의원 선거에 연달아 낙선하며 가세가 기울었다고 합니다. 단칸방에서 온가족이 살기도 했고 때로는 흩어져 살기도 했습니다. 고등학교 땐 등록금을 제 때 내지못해 매를 맞기도 했으며 몸도 상당히 왜소해서 '소소'라는 별명을 갖기도 했습니다. 

<모래시계> 이후 꽃길만 걸을 줄 알았으나 전역 후 소속사가 부도가 나며 빚더미에 앉게 됐습니다. 이후 잠깐 <태양은없다>를 통해 주연급 배우로 반등하지만, <인터뷰>, <태풍> 등 거대 자본이 들어간 작품들이 기대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하며 10년 간의 길고 긴 암흑기에 접어들고 맙니다. 영화들은 물론이고 드라마까지 저조한 성적을 거두며 1999년에는 '흥행부도수표', 2009년에는 '퇴물'소리를 듣게 됩니다.데뷔부터 쭉 승승장구한 이미지여서 과거이야기를 밝힐 법도 한데 본인은 이런 얘기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세상 살면서 그 정도 안 힘들어본 사람은 없다"라고 말하며 유독 자신만 세상의 모든 짐을 떠안은 것처럼 동정표를 유도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실패를 교훈삼아 작년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으로 대박이 났습니다. 많은 실패들이 아무일도 없던 것처럼 다시 부활한 그의 모습에 팬들은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첫 사랑의 기억이 늘 어린 시절읠 모습 그대로 남아있듯 30년이 지나도 언제나 변함없이 젊고 아름다운 남자의 상징으로 남아 있을 배우 이정재.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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