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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주인물

마크 월버그에 관한 충격적인 사실

by 짤줍맨 2021.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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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생: 1971년 6월 5일 메사추세츠 주 도체스터
  • 종교: 가톨릭
  • 신체: 173cm

마크 월버그는 13살때 코카인에 중독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1986년 매사추세츠 주 검찰총장은 월버그와 마이클 길포일, 데릭 퍼카트를 고소했었습니다. 이 사건은 그들이 세 명의 흑인 아이들이 학교에서 집으로 걸어오는 것을 보았을 때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이 걷고 있을 때, 피고인 마이클 길포일, 데릭 퍼카트, 마크 월버그, 그리고 또 다른 백인 남성이 자전거를 타고 그들을 따라가기 시작했으며, 가해자 중 한 명은 흑인 콜레만에게 "우리는 이웃에 있는 흑인 깜둥이를 좋아하지 않으니 그 지역에서 꺼져라."라고 말했습니다. 내쫓는 과정에서 마크 월버그를 포함한 가해자 친구들은 "깜둥이를 죽여라"고 외치며, 각각 콜먼 남매를 향해 돌을 던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월버그와 그의 친구들은 인종 차별적인 욕설을 퍼부으면서 다시 아이들에게 돌을 던졌다고 합니다. 흑인 학생과 백인 학생 두 명이 머리를 맞았습니다. 마크 월버그는 또한 다른 백인 여학생에게 돌멩이 가방을 던진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교사는 엠뷸런스를 불러야 했습니다.

마크 월버그는 어떠한 유죄도 인정하지 않고 사건을 해결하면서 동의서에 의한 최종 판결에 동의했습니다. 인종이 다른다는 이유로 폭행이나 괴롭히지 않기로 합의했습니다. 도체스터에 사는 흑인 여성 피해자는 한번 인종차별 주의자는 평생 인종차별 주의자라며, 월버그를 용서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1988년 당시 16세인 마크 월버그는 길을 걷던 타인람이라는 이름의 베트남 남자를 맥주 상자 2개로 공격했습니다. 월버그는 대략 길이가 150cm의 커다란 나무 막대기를 들고 있었습니다. 월버그는 탄 람에게 접근해서 "베트남 놈들"이라고 불렀고 막대기로 머리를 가격했습니다. 탄 람은 의식을 잃고 땅바닥에 쓰러졌습니다. 막대기는 두 동강이 났고 나중에 현장에서 회수되었다고 합니다. 의식을 잃은 걸 확인하고 마크 월버그는 빈손으로 달아났습니다. 잠시 후 그는 베트남 트린에게 다가가 '경찰이 오고 있으니, 나를 숨게 해줘'라고 말했습니다. 순찰차가 떠난 후, 그는 숨겨준 은인 트린의 눈을 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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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결국 폭행 혐의로 유죄를 인정했고 징역 2년에 집행유예 21개월을 선고받았습니다.
당시 16살이였지만 성인으로서 기소되었습니다. 
마크 월버그는 서퍽 카운티 디어 아일랜드 교도소에서 45일간 복역한 후 풀려났다고 합니다.

마크 월버그는 이 사건으로 45일간 수감생활을 했지만, 이 범죄가 사면되어야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피해자 쟈니 트린은 데일리 메일 인터뷰에서 베트남 전쟁에서 공산주의자들과 싸우다가 부상을 당한 후 이미 한쪽 눈이 실명되었다고 밝혔습니다. "나는 마크 월버그 때문에 눈이 멀지 않았다." 며 베트남 출신 트린이 말했습니다.


"마크 월버그가 날 심하게 구타를 했지만 내 왼쪽 눈은 전쟁때 실명이 된 상태였으며 실명에 대한 책임은 없습니다."라고 전했습니다. "나는 그가 사면받는 것을 보고 싶다. 그는 더 이상 그 범죄를 그에게 덮어씌워서는 안 된다, 마크 월버그를 직접 만났으며 지금은 원한을 품지 않고 있다"며 이어 말했습니다.

 

또한 1992년에는 마크 월버그가 경비원을 매우 심하게 폭행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마크 월버그는 재판이 시작되기 며칠 전 피해자와 합의해서, 폭행과 구타 혐의로 형사 고발을 면했다고 합니다. 희생자는 로버트 D라는 20세의 경비원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월버그의 경호원 데릭 맥콜이 자신을 제압하는 동안 월버그가 자신의 얼굴을 여러 차례 발로 찼다고 말했습니다.

 

정말 소름돋는 부분은 2014년에 마크 월버그가 메사추세츠주에 자신의 인종 차별 범죄에 대한 공식적인 용서를 요청하는 탄원서를 제출하면서 알려졌는데, 이 탄원서가 자기 레스토랑에서 주류 판매 허가증을 받기 위해서 피해자인 쟈니 트란을 찾아서 용서를 구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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